불길 잡히면 또 살아나... 안동 하회마을 주민들 '집 버리고 도망쳐'

 안동시청 관계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하회마을 화경당 고택에 울려 퍼졌다. 서애 류성룡의 9대 후손인 류세호 씨(74)는 1797년 지어진 이 고택을 지켜온 수호자였지만, 이날만큼은 속수무책이었다. 낙동강 너머 산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그는 갓집과 함 같은 오랜 유물들을 차에 실었다. "불길이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며 "갑자기 대피 지시를 받고 이웃들과 말도 못 나누고 떠나는 길"이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착잡함이 묻어났다.

 

오후 7시경 하회마을은 이미 텅 비어가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이 마을의 골목에는 몇몇 주민들만이 불안한 표정으로 낙동강 너머 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동소방서와 예천소방서 소방관 30여 명은 2시간째 전통가옥 지붕에 물을 뿌리는 작업을 계속했고, 지자체 관계자 60여 명은 주민 대피를 지원하느라 분주했다. 하회마을 주민이자 119의용소방대 자원봉사자인 유모 씨(45)는 "여기는 건물들이 다 목조주택이라 불이 한 번 붙으면 살아남기 어려워 걱정이 크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청송군 파천면에서는 불에 탄 60대 여성의 시신이 가족에 의해 발견됐고, 경찰은 산불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경북북부 제1∼3교도소, 경북직업훈련교도소, 안동교도소 재소자 총 3500여 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21일부터 시작된 경남 산청 산불은 닷새째 계속되며 하동과 진주로 확산됐다. 울산 울주군에서는 대단지 아파트 앞까지 불이 번져 주민들이 직접 소화전에 호수를 연결해 불을 끄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북 정읍시 소성면 금동마을에서도 산불이 발생해 주택 13개 동이 불에 타고 주민 25명이 대피했다.

 


교통망도 마비되기 시작했다. 코레일은 중앙선 및 동해선 일부 구간 열차 운행을 중단했고, 서산영덕고속도로 서의성∼영덕 구간과 중앙고속도로 의성∼서안동 구간, 포항∼영덕∼울진을 잇는 국도 7호선도 전면 차단됐다.

 

국가동원령까지 발동한 진화 작전에도 불구하고 산불은 계속 확산됐다. 강풍과 건조한 공기, 고온이라는 세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꺼진 불이 되살아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의성 산불은 24일 오전 진화율 65%에서 25일 오전 54%로 떨어졌고, 산청 산불도 한때 90%까지 진화됐으나 다시 번졌다. 울주 산불 역시 25일 오전 98%까지 진화됐으나 오후에 불길이 다시 살아나 진화율이 92%로 후퇴했다.

 

진화 인력의 피로도도 한계에 달했다. 24일 오후 상주소방서 소속 40대 소방관이 진화 작업 중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국방부는 병력 1500여 명과 군 헬기 45대를 투입해 산불 진화와 의료 지원에 나섰으며, 산불 발생 이후 총 5000여 명의 병력과 146대의 군 헬기가 동원됐다.

 

유일한 희망은 27일 예보된 비였지만, 피해가 심각한 경북 지역에는 최대 10mm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불길을 잡기에 충분할지 의문이 제기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26일 밤부터 경남 남해안 5∼20mm, 부산·울산·경남내륙과 경북서부내륙 5∼10mm, 대구·경북에 5mm 미만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으며, 27일 새벽에는 경북과 경남 내륙에 잠시 소강 상태가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