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폭염에 무릎 꿇어.."삼성·LG가 판 흔든다"

국내 가전업계가 유럽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유럽은 그동안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이 10% 미만에 불과한 '에어컨 불모지'로 여겨졌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수요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유럽 냉난방공조(HVAC)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공략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달 17일부터 21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 냉난방공조 전시회 'ISH 2025'에 참가해 최신 냉난방공조 솔루션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고효율 냉난방 시스템인 히트펌프 '슬림핏 클라이밋허브', 'EHS 모노 R290' 등의 EHS 제품과 신제품 '비스포크 AI 무풍콤보' 벽걸이형 에어컨을 소개했다. 또한, '스마트싱스'를 활용한 AI홈 솔루션으로 가정 내 에너지 최적화를 강조했다.

 

LG전자는 '혁신적 난방의 개척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주거용 공기열원 히트펌프 '써마브이'와 유럽 단독주택에 최적화된 '써마브이 R290 모노블럭'을 선보였다. 또한, AI 기술이 냉방 세기를 자동 조절해 전기료 절감을 돕는 상업용 솔루션 '멀티브이 아이'도 공개했다. 양사는 유럽의 난방기 보급률이 높은 점을 감안해 히트펌프를 중심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도, 무풍에어컨 등 일부 냉방장치도 함께 선보이며 유럽 내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있다.

 

유럽은 그동안 여름철 기온이 30도 안팎으로 유지되면서 에어컨에 대한 필요성이 낮았고, 타 대륙보다 엄격한 환경 규제, 높은 전기료, 도시 미관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 등으로 인해 에어컨 보급률이 저조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3~5%에 불과하며,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유럽 전체의 에어컨 보급률도 19%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유럽에서도 무더위가 심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는 섭씨 40도까지 치솟은 폭염으로 인해 실내외 냉방장치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에어컨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GMI에 따르면 유럽 에어컨 시장 규모는 2023년 800억 달러(약 118조 원)에서 2032년까지 연평균 4.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모도 인텔리전스 역시 2027년까지 5.8%의 연평균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다만, 유럽의 엄격한 환경 규제와 문화적 장벽은 여전히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과 친환경 전환을 목표로 다양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건축물의 보존과 도시 미관 유지를 위해 에어컨 실외기 설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파리의 경우, 구도심 지역 건물 외벽에 실외기 설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크로아티아는 올해 1월부터 건물 외벽에 에어컨 및 위성 안테나 설치를 전면 금지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러한 규제 속에서도 업계는 친환경·고효율·맞춤형 3대 전략을 바탕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ISH 2025에서 지구온난화지수(GWP)가 3에 불과한 자연냉매(R290)를 적용한 제품을 강조했다. LG전자는 지난해 7월 프랑크푸르트에 '에어솔루션연구소'를 설립하며 유럽 맞춤형 공조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폭염이 심화되면서 에어컨 관련 규제도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친환경 정책과 도시 미관 유지 규제는 여전히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 시장이 에어컨 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가전업계가 유럽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는 혁신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지가 주목된다.